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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라, 언론 이여기(起), 승(承), 전(轉)은 건너뛰자. 결(結)로써 시작하자.
선데이타임즈 | 승인 2018.09.20 11:10|조회수 : 767

거두절미하고, 그대들은 언론의 기능과 역할이라는 테제에 두려워하고 고뇌하며 자책해 본적이 있는가? 이민초창기의 교민 언론은 한때나마 세상의 부정과 불의를 호통치며 바르게 갔었다. 헌데 그리 길지않아 적당히 비겁해지면서 치우침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피해갈 수 없는 삶이라고 고집을 부렸다. 그 고집이 바른 것인지 바르지 않은 것인지를 내가 판단할 자격은 없다. 다만 언젠가부터 세상의 불의와 거짓과 부조리를 따끔하게 지적하는 교민 언론을 찾기가 간단치 않다. 자신의 이해득실에 따라 불의는 정의가 되고, 부조리는 어쩔 수 없는 삶이 되고, 거짓은 외면이 돼 버렸다. 적선 하듯 던져지는 빵 한 조각에 자존심을 접고, 그 얕음을 변명하는 괴변이 분분하다. 조목조목 지적하고 싶지만 자칫 잘못 해석하면 좁은 지역사회 편가르기한다는 쓸데없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개연성때문에 삼간다.

 저간에, 한 언론인이 취재도중 테러를 당했다. 그런데도 교민사회 언론이라는 그대들은 꿀 먹은 벙어리다. 그 많다는 교민 언론 어디를 뒤적여봐도 한 줄 사실 기사를 볼 수가 없다. 오랜 시간을 지켜봤지만 모르쇠다. 절대 그렇지 않겠지만, 테러가해자와 묵시적인 거래라도 있는지, 무슨 눈치라도 봐야하는지, 부정적인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고, 진실을 진실로 쓰지 못하고 외면한다면 교민 언론은 저잣거리에 뿌려지는 찌라시와 다를 게 뭔가? 사실과 진실에 침묵하는 언론을 언론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대들은 언론으로서 자긍심도 없는가? 이 쓴소리의 이유를 행여 넘겨짚지 마라. 테러를 당했다는 어느 특정 언론 때문이 아니다. 그대 언론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사태다.

 그대들, 서로 추구하는 언론관이 다르다 해도 동종의 언론이 테러를 당하면 격분할 줄 알아야한다. 언론만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그 누구라도 테러를 당하면 그대들은 테러가 발생한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분노해야 한다. 테러는 인간만의 특성인 대화라는 인간의 본성을 파괴하는 동물적인 공격 행위다. 테러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야수의 전유물이며 인간을 황폐화시키는 가장 악질적인 사회악이다. 비단 테러만이 아니다. 공존하는 사회에서 사회현상에 모순되고 부정한 사태가 발생하면 조금의 두려움도없이 그 부당함을 지적하고 질책할 줄 알아야한다. 그것이 언론이다. 허긴 제대로 된 논단 한 줄 사설 한 줄 보기도 힘든데, 내가 너무 과한 욕심을 부리는지도 모르겠다.

 고국의 청와대 부대변인 고민정이 사실에 눈감은 뉴스에 대해 “뉴스는 사실에 기반 했을 때 뉴스입니다. 소설과 구분되는 지점이 바로 사실일 것입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보도하지 않는 언론을 어떻게 봐야 하는 겁니까. 팩트를 가장 중요시해야 하는 언론의 보도는 언론의 생명입니다”고 지적했다. 사실을 사실대로 보도하지않는 언론에 대한 따끔한 일침이었다. 그대들도 알고있겠지만, 언론의 여러 기능과 역할 중에서 언론학자들이 손꼽는 가장 중요한 기능은 “실체적인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다. 핵심 단어로 압축하면 감시견(watchdog), 적대자(adversary), 설정자(agenda-setter)의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사회의 부조리와 부정부패를 감시하고, 권력자와 공생의 관계가 아닌 경쟁적인 적대자의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권력의 오남용을 비판하고, 의제설정자로서 사회의 쟁점이나 이슈 등을 발제 하는 것이 언론의 주된 기능이다.”

 교민사회에서 언론이라고 완장 차고 활보하는 언론인들이여, 그대들은 언론이라는 무게와 가치를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가? 그대들이 찬 언론이라는 완장이 생존과 허세의 징표가 아닌,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고 불의를 감시하는 상징이라는 걸 새기길 바란다. 언론이라는 완장에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바르게 살아야한다는 것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이다. 언론이라는 명제 앞에 비겁하지말라. 조금 힘겹더라도 깊고 떳떳하게 살아라. 그것이 삶의 참 가치임을 잊지 말라. 그대들의 완장에 작은 긍지라도 보여주길 진심으로 희원한다. 참다 참다 못 참고 쓴다. <최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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